2010년 07월 14일
계절들 - 페터 빅셀
참으로 독특한 이야기를 읽어버렸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라는 표현만으로 설명이 되는 이야기들은 많지만, 이 소설은 도저히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작가가 소설을 쓰기 위해서 어떤 인물을 창조해내고 그 인물의 행동, 생각, 성격, 성장배경, 그리고 인물의 일상을 머릿속으로 구상하는 것을 활자로 옮겨놓는 동안 인물은 어느새 자아를 가진 존재처럼 작가의 손을 떠나 버린다.작중 인물인 '키닝어'는 실체가 있는 듯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실체가 없는 순수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런데도 창조주라 할 수 있는 작가의 통제를 벗어나 버리다니, 도대체 너는 누구란 말이냐?
토마토 색으로 칠해진 우중충한 벽, 낡은 수도관은 새고, 보일러는 제대로 돌아가지않는 이 낡아빠진 집에서 여섯살 난 아들 '마티아스'와 아내와 함께 다락층에 세들어 사는 '나'와, 이 소설의 주인공인 '키닝어'가 이 소설에서는 같은 공간에 공존한다. 작가와 주인공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물론 둘은 만나지 않는다. 작가의 묘사를 통해서만 그를 볼 수 있다. 작가 자신인 '나'는 그에게 키닝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고향 '빈'에 두고온 '엘프리데'라는 애인까지 만들어 준다. 번듯한 직업과 취미까지.
이런 키닝어가 점점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 저자와 등장인물의 혼연일치를 의미하는 것 이냐 하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인간은 이야기 하는 존재인 동시에 이야기 되는 존재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는 시의 한소절처럼 인간이란 누군가에 의해 이야기 되었을 때에야 진정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행을 떠나고,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저자에 의해 이야기되고 있는 키닝어도 이제는 존재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원래부터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일까?
계절이 돌고 돌듯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해서 돌고 돈다. 누군가의 이야기는 어딘가에서 계속된다. 언젠가 그 이야기가 끝나면 훌쩍 떠나가버린 키닝어도 계절따라 다시 돌아오겠지.
# by | 2010/07/14 19:46 | 독서 | 트랙백
옛날옛날, 내가 아직 어린이 신분이던 시절에, 정기구독하던 한 소년 잡지에서 수상한 기사를 발견한 적이 있다. 대략 현직 공군장교가 자신이 우주대왕이라고 고백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는데, 말하자면 커밍아웃이다. 기사 중간에는 파일럿 복장을 한 주인공의 사진과 블랙홀을 묘사한 듯한 삽화가 떡하니 실려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라면 흔히 전통 혼례나 종갓집같은 토속적인 소재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아침일찍 일어나 수험생 자녀 학교 보내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고부간의 갈등으로 속을 끓이고, 때로는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여고생 시절로 돌아가 누구는 어떻게 살더라 수다를 떨기도 하고, 그렇게 조금씩 나이먹어 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야 말로 이 시대의 가장 한국적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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